지난 15일 신규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 박물관이다. 그것도 경복궁 옆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안국역에서 나오면 바로 마주칠 수 있다. 서울시에서 공예박물관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자 했는지 위치만 봐도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박물관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박물관이 들어선 부지의 역사는 다층적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왕실 가족의 제택 혹은 가례 준비를 위한 장소로서의 안동 별궁이 자리했었다. 그 이후에는 해방부터 70여 년간 풍문여고가 들어서며 학생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미 대지에는 두 다른 시대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안동별궁터 위로 시민들을 위한 열린 광장이 들어섰고, 학교 건물은 그 자체로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학교 건물
서울공예박물관은 총 7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원통형으로 생긴 어린이 박물관(교육동)은 신축일 줄 알았는데, 모든 건물이 리모델링한 건물이라는 점은 의외로 다가왔다. 도시재생과 역사 보존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중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공예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전시 1동과 전시 3동, 1동과 뒤로 연결되어 있는 전시 2동 총 3개이다. 각각의 상설전시 공간은 공예품의 특성에 맞게 분류하여 배치하고 공간을 설정했다.
하지만 연속적인 내부와는 별개로 관람 동선은 복잡한 편이다. 전시 1동을 중심으로 2동과 3동은 3층의 구름다리로 이어져 내부적인 연결을 꾀했지만 오래된 학교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전시동의 수직 동선은 중앙계단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또한 건물 간의 이동이 한 층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내부를 통해서만 이동하기 위해서는 중복되는 수직 동선이 불가피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외부로 빠져나와 우회하는 방법이 있는데, 관람 거리가 길어지다 보니 전시의 흐름이나 집중도 면에서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안내 책자나 사이니지를 통해 더 관람객들을 적극적으로 동선을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벽을 넘어 우리 곁으로 온 작품
대체로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시각에 의존하여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행위가 주를 이루는데 서울공예박물관에는 박물관 곳곳에 공예가들의 설치작품이 자연스럽게 놓여 일 방향적인 전시를 탈피하고자 했다. 안내 데스크 옆, 은행나무 아래, 지나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이 앉고 만지며 작가와 소통한다. 유리 벽 안에만 머물러 있던 작품은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한 발 다가왔으며 공예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전시의 장벽을 낮추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뜻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어린아이에서부터 고령자, 신체적, 정신적 장애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여 경사로와 요철 없는 바닥을 두어 거동이 불편한 관람객을 배려하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작품 일부를 3d로 프린트하여 만져볼 수 있도록 전시실에 촉각 관람존을 배치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관람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미술이 모두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한 단계 더 나은 전시문화를 조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의 가치나 시간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박물관이 위치한 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왕궁에서 학교로 쓰였고, 이제는 그 위에 모두를 위한 박물관으로서 새로운 시간을 덧입힐 것이다. 400년의 시간 동안 여러 갈래로 나뉜 역사를 엮어 하나의 공예로 완성해낸 예술 공간은 도시에서 사라진 것과 남겨 놓은 흔적 사이에서 스스로 재생하며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