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역사를 되새기는 방법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울역 근처에 있지만 철길에 둘러싸여 발길이 쉽사리 닿지 않는 곳. 그래서 개장한지 3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서소문에 대해서는 박물관 근처에 지천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배경지식이 거의 없던 상태였다. 그렇기에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사료나 관람 동선을 미리 알아두고서 방문했다.

서소문, 역사

조선 시대 서소문 밖 사거리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다. 400년간 국사범의 참형지로 이용되어 수많은 목숨이 칼에 스러졌고, 특히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73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한 순교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자리 잡은 이곳은 근대화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하여 철도 시설에 둘러싸여 도심 속에 고립되었다. 1973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공영주차장과 쓰레기처리장이 지하에 설치되며 휴식공간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2011년 천주교구의 제안으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과 공원을 건립하게 된다.

지하의 공영주차장을 재편하여 지어진 역사박물관은 지하와 지상이 어떻게 관계할지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근린공원으로 쓰이고 있는 지상층에는 박물관이 최소한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풍성한 식재 사이로 살짝 내민 벽돌 건물이나, 공원 양 끝에 놓인 진입로는 방문객을 조심스럽게 지하로 유도하고 있다. 근린공원 아래 자리 잡은 역사박물관이 도시 속 일상과 역사적 가치가 땅의 위아래로 공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듯하다.

만초천의 물이 이끄는 동선

건물 안에서는 서소문 근처에서 흐르던 만초천을 상징하는 수공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공원에서부터 시작하는 물줄기는 박물관 내부로 흘러 내려가 가장 낮은 곳까지 다다르며 방문객들을 인도한다.

물이 흐르듯 유유하게 하강하는 관람 동선은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은유를 하나의 시퀀스로 짜여 있다. 전시 작품을 위한 동선이 아닌 공간을 감상하기 위한 동선은 방문객이 각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콘솔레이션 홀’을 우회하는 어두운 통로를 걸어 내려가면, 어떠한 장치 없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만으로 침묵하게 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우러러보게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마주치는 ‘콘솔레이션 홀’은 박물관의 주 공간 중 하나다. 예배당이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이곳은 거대하게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경외감과 고요함을 방문객에게 전달한다.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떠 있는 큐브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물속에 있는 듯 귀가 먹먹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콘솔레이션 홀에는 단상이 하나 있고, 이곳에는 박해 시기에 순교한 성인 다섯 분의 유해가 담겨 있다고 한다. 빛의 우물처럼 홀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빛은 유해가 담긴 곳을 비추고 있고 신자들은 이곳에 와서 인사를 드리고 간다. 단상에서 이어지는 빛으로 된 물줄기는 반대편의 하늘광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유도한다.

하늘광장에 와서야 지상 공원에서 마주쳤던 낮은 벽돌 건물의 실체를 마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극적으로 거대한 높이의 빈 공간이 주는 콘텐츠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람으로 생겨난 어둑해진, 참회하는 마음이 하늘을 마주함으로써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다양한 이유로 생겨나겠지만,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강한 대비를 통해 방문객에게 죽음과 생명의 의미, 서소문의 지난 역사를 교훈 삼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느끼게 한다.

하늘길과 홀로코스트 보이드

하늘 광장 옆에는 ‘하늘길’이 존재하는데 어두운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비워진 길 사이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장소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이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에서의 경험과 오버랩 되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에서는 기하학적인 평면으로 방향감각을 잃은 채 걷다 보면,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느꼈을 불안이나 공포의 감정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홀로코스트 보이드’를 마주하게 되는데, 높게 솟은 경직된 콘크리트 내부 안에서 바닥에 깔린 수많은 얼굴철판을 밟고 지나가다 보면 추모하는 감정이 저절로 들었다.

역사적인 사건을 추모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원 아래 역사를 품은 박물관 역시 방문객이 관람을 마치고 나면 서소문이 지닌 역사를 기억하고자 함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건축가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설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간은 수단에 불과하고, 시간은 건축의 목적이 된다.”

故 정기용 건축가